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아시아의 한류 (문단 편집) == [[대만]]의 한류 == 대만의 한류 현상은 상당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처럼 권위주의 국가라 서구 문화에 대해 국가가 제재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반일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남아시아처럼 '잘사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는 이견없이 한국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한류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의 대만은 한국과 대등하거나 좀 더 앞서있는 나라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또한 그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아,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유행한 배경인 '쇼와시대의 향수'(과거의 향수)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대만은 자본주의 국가라서 서구 문명도 곧바로 들어오고, 같은 중화권이라는 요인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홍콩 문화도 이미 인기를 얻고 있었다. 또 '일본의 문화 식민지'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일본 문화가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 대만과 중국에서는 한류 팬들을 [[합한족|하한쭈]](哈韓族)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만에서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하르쭈(哈日族)으로 부른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홍콩 문화가 점점 몰락하기 시작하고, 일본 문화는 식상해졌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아직 제대로 된 문화 컨텐츠를 생산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오로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서구권 문화만이 기세를 떨쳤다. 이 때 마침 아시아권에 맞는 유교 문화와 서구 문화를 적절하게 결합한 한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한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블 및 위성 TV, 인터넷 등이 보급되면서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한편,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국가 경쟁력의 강화도 크게 기여했다. 예를 들면, 2000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민진당 후보 진영은 캠페인 송으로 클론의 노래를 앞세웠다. 그 이유는 대만보다 앞서 민주화가 되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한국을 모델화하기 위해서였다. 2004년 입법위원 선거 때도 한복을 입고 유세를 한 야당의 여성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대만의 불안과 방황하는 병을 고쳐야 한다는 의미에서 대장금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의도였다고 한다. 과거 1990년대 시절 한국의 민주당에서 [[조순(1928)|조순]] 서울특별시장과 [[이해찬]]이 [[판관 포청천]]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다.[*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61] 하지만, 한류 유행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 타이베이 연예인 노동조합은 2005년 말 한류 현상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 주장하고,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서 생존권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동아시아의 한류>(신윤환,이한우 편저, 전예원, 2006) P68] 게다가, 대만에서는 [[2011년]] 1월 들어서 외국 음악이나 드라마 방송 비율을 현행 최대 '''80%'''에서 60%로 제한하는 법안이 제정되려는 움직임을 [[http://www.ytn.co.kr/_ln/0104_201101171327405950|보이는 중이다.]] 2016년 7월 12일 방영한 방송에서 "대만 사람이 아니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 되고 싶은가?"로 조사한 결과 [[http://img.theqoo.net/img/iRiDF.jpg|137명이 2위로 뽑은 일본, 싱가폴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336명이 한국을 선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